홍콩민주화운동 타임라인
1800년대
1840
- 아편전쟁
1842
- 난징조약(南京條約) 체결-홍콩이 영국에 영구 할양
1860
- 제 1차 베이징조약(北京條約): 영국이 주룽 반도(Jiulong, 九龍半島)의 계한가(Boundary Street, 界限街) 이남 분할 점령 및 스톤 커터(Stone Cutter) 섬 영구 할양
1898
- 제 2차 베이징 조약: 영국이 신제(New Territories, 新界) 및 235개 부속도서를 1898년 7월 1일 ~ 1997년 6월 30일까지 99년간 조차
1900-1945
1940-1945
- 1941.12.8 일본 제국 군대의 홍콩 침략
- 1941.12.25 영국과 캐나다군이 일본에 식민지 지배권 이양
* 전쟁 전 홍콩 인구는 160만이었으나, 1945년 8월에는 60만 가량으로 줄어듦.
1949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46-1947
- 홍콩총독부 재수립 및 홍콩 정청 개칭
1898
- 제 2차 베이징 조약: 영국이 신제(New Territories, 新界) 및 235개 부속도서를 1898년 7월 1일 ~ 1997년 6월 30일까지 99년간 조차
1950-1969
1950~
- 국공내전을 피해 도망친 본토 이민자들로 인해 급격한 인구 회복
- 상하이, 광저우의 회사들 홍콩 이전
- 한국전쟁 시 유엔이 공산국가와의 무역을 통제하면서 중국 본토와의 무역 중단
1967
- 67폭동: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에 자극받은 좌파 공산주의 지지나들이 식민지 정권에 대항해 노동 쟁의 및 폭력 시위 발발
1968
- 홍콩독감 팬데믹 -홍콩인구의 15%인 50만명이 감염
1970-1989
1979. 3
- 머레이 맥클레호스 홍콩총독이 중국 정부 초청으로 중국 본토 방문 시 중국이 영국의 홍콩 반환 문제 제기
1981. 3
- 영국의회, 홍콩 주민의 영국 이주를 방지하기 위한 국적법 개정
1982. 9
- 후야오방(胡耀邦)의 홍콩주권 회복 선언
-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의 방중, 홍콩 반환 관련 협상 개시
1983. 6
- 중국, ‘항인치항(港人治港)’ 및 ‘50년불변(五十年不變)’ 원칙 선언
1984. 7
- 덩샤오핑(鄧小平)과 제프리 하우(Geoffrey Howe) 영국외상 회담 개최
- 1997년 홍콩 주권 회복 후 50년간 현 체제유지를 골자로 하는 예비협정 체결
1984. 12. 19
- 대처 영국 수상-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리 ‘홍콩 문제에 관한 영·중 공동선언(협정)’ 정식 서명
1989. 6
- 중국에서 천안문사태 발생
1990년대
1990. 4
-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Basic Law)’이 제정되어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과 -자유민주주의 개정안을 투표방식에 적용
1992. 1
- 패튼 홍콩 총독, 정치개력안 발표
1995. 6
- 영국-중국 간 홍콩 내 종심법원 설치 및 신공항 건설 자금 조달 방안 합의
1996. 1
- 150인으로 구성된 특구준비위원회 발족, 400인의 추선위원회 구성
1996. 12. 11
- 추선위원회에서 초대 특별행정구 행정수반 및 60인의 잠정 입법의원 선출
1997
- 홍콩, H5N1 (조류독감) 대유행
1997. 7. 1
-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회복 및 홍콩특별행정구 설치
- 제 1대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수반 취임 – 퉁치화(Tung Chee Hwa, 董建華)
2000-2018
2003
- 사스(SARS :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대유행 기본법 23조항 적용 반대 시위 50만명 결집, 취소
2005
- 둥젠화 행정장관 사임. 쩡인취안(중국어 간체자: 曾荫权, 정체자: 曾蔭權, 도널드 창) 취임
- 12.10-20 : 홍콩에서 WTO각료회의 반대 시위 개최
2012
- 광복운동: 중국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
2014
- 우산혁명
2016
- 피쉬볼 혁명 -피쉬볼(어묵) 노점상 철거에 대항한 투쟁 – 폭력 충돌이 극대화됨
2017
- 캐리람 행정장관 취임
2019
2월
- 찬퉁카이 살인사건 발생
- 홍콩인 찬퉁카이가 대만에서 연인 살해 후 홍콩 귀국
- 범죄인 인도법 조약상 국외의 범죄에 대한 처벌 불가능
- 범죄인 송환법 촉발
3. 31
- 최초의 송환법 반대시위 전개
6. 6
- 법조인 송환법 반대 집회
- 검은 정장 차림의 법조인들 행진
- “송환법은 홍콩의 자치권과 기본법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우리는 캐리람 장관과 존 리 안보 비서관에게 이 법안을 철회할 것을 분명하게 요구한다.” 라고 말하며 법조인들이 상복을 연상케 하는 검은 정장 차림으로 정부청사까지 침묵 행진
6. 9
- 주최측 추산 100만명 결집 “반송중反送中” 집회 개최
- 홍콩이 1997년에 반환된 이후 가장 큰 시위
- 1989년의 천안문 시위와 2003년 7월 1일 시위를 능가하는 규모.
6. 12
- 경찰, 첫 최루탄 발사 -경찰이 빌딩 밖에서 최루탄을 발사함으로써 사람들이 빌딩 회전문으로 몰려들어 부상.
6. 15
- 홍콩정부, 송환법 표결 강행 발표
- 홍콩 시위 관련 첫 사망자 발생 : 노란 우비를 입은 청년이 송환법 완전철회 요구 후 자살. 그는 송환법 완전 철회, 부상당한 학생 석방, 폭도규정 철회, 캐리람 사퇴 등을 요구하고 투신. 이후 노란 우비가 시위대의 희생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됨.
6. 16
- 주최측 추산 200만명 + 1 참가 집회
- 홍콩 사상 최대의 집회
- +1은 전날 죽음으로써 시위한 노란 우비 청년을 위한 숫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캐리람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기 시작.
- 캐리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송환법 철회 여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채 사과문 발표, 시위대와 경찰의 갈등에 대해서도 침묵.
6. 29
- 두번째 사망자가 벽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
- “우리의 싸움이 길어질지라도, 우리가 쥐고있는 믿음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송환법]의 전면 철회, ‘폭동’ 규정의 철회, 학생과 시위대의 석방, [최고행정관 캐리 람]의 사임, 경찰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 라는 메세지를 남김
7. 1
- 홍콩 입법회 점거 – 송환법 완전 철폐 요구
- 오전, 홍콩의 중국 반환일을 맞은 행진 후, 일부 시위대가 입법회로 몰려들어 입법회를 점거
- 이후 입법회 점거를 두고 시위대의 폭력성에 대한 찬반 양론이 나뉘는 계기가 됨
7. 2
- 캐리람, 송환법 연내 철회 발표. -이를 신뢰하지 않은 시민들, 지속적으로 시위에 나섬.
7. 3
- 네번째 사망자 발생. – “시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정부는 요구에 응하지 않을것이다, 홍콩에 필요한 것은 혁명이다.”
7. 9
- 캐리람, “The bill is dead”라고 발표했으나, 시민들은 이것이 ‘완전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
7. 21
- 위엔롱 백색테러
- 시위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
- 평화롭게 시위를 마치고 지하철로 귀가하는 시민들을 하얀 옷을 입은 갱단이 공격하나, 경찰은 이들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감사하다며 인사. 이로 인해 시민들의 공포와 분노 폭발. 시위의 강도가 높아짐.
7. 26
- 첫번째 공항 점거 시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홍콩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공항 점거 시위
8.5
- 홍콩 전역에서 충돌 발생, 100발 이상의 최루탄 발사 추정
- Blue Ribbon Attack : 친중성향의 대표색 파란 셔츠를 입은 깡패무리가 시민들을 공격
8.7
- 홍콩 과학박물관 레이저 집회
- 레이저 펜을 ‘공격적 무기’로 규정해 이를 소지한 학생을 연행한 경찰에 분노한 시민들이 레이저를 쏘는 집회 개최
8. 11-13
- 11일 시위에서 시위대 여성이 경찰이 쏜 빈 백 탄에 맞아 실명하는 사건 발생. 12일, 분노한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해 공항 가동 중단
- 979편의 항공기 운항 취소
- 시위대 지지발언을 했던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 직원 2명 해고
- 홍콩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홍콩지지운동(#EyeforHK)가 온라인 상에서 활발히 조직됨
8. 18
- 5대 요구 재확립과 송환법 반대 운동가들의 연합을 위한 집회 – 주최측 ‘민간인권전선’ 추산 170만명 결집
- 폭우 속에서도 대규모 인파가 평화로운 집회 마무리
- 중국 정부가 선전 시에 인민해방군을 배치, 처음으로 ‘테리리즘’이라는 단어를 시위대에 적용.
8. 30
- 조슈아 웡, 아그네스 초우 불법집회 모집 혐의로 체포 후 석방
- 대규모 집회 이전 민주파 인사 대거 체포
- 이들은 석방 후 기자회견에서 “시위 핵심 인사 무더기 체포와 기소의 배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중앙정부가 있다”며 중국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웡은 “중국이 홍콩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나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힘.
8.31
- 프린스에드워드역 경찰 난입, 무작위 체포
- 홍콩 시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꼽힘
- 경찰이 갑자기 지하철 차량 안으로 난입해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을 쏘고 무차별 구타를 하며 체포
- 이날 실종된 3명의 행방은 아직 미상. 사건 후 시민들은 역 앞에 제단을 만들어 이들을 애도하고 경찰에 CCTV 공개를 요구하였으나, 경찰을 조작된 CCTV 영상만을 공개
9월
- 9월 트렌드 – 교복 입은 학생들의 집회/ 인간띠
- 9월부터 두드러지는 시위 양상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시위
-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함
9. 2
- 10여개 대학, 1000개 중고등학교가 참여한 수업거부 연대 집회. 첫 학기가 시작되는 9월 2일을 기점으로 많은 학교가 무기한 수업 거부 및 파업 선언.
- 이들은 9월 13일까지 송환법을 완전 철회하지 않으면 수업거부를 이어가겠다고 밝힘.
9. 4
- 캐리람, 송환법 철회 성명 발표
9. 13
- 추석맞이 Lion Rock 등반 시위
– 시위대가 추석을 맞아 홍콩섬에 위치한 라이언 락 산에 올라 달맞이하는 시위 진행.
9. 22
- 천옌린(15) 씨 시신이 해상에서 발견
– 시위에 참가했다 실종된 15세 여학생 천옌린 씨의 시신이 바다에서 나체로 발견. 시민들은 살해된 뒤 바다에 버려졌을 가능성 제시.
9.27-30
- 중국 국경일을 앞두고 연이은 대규모 시위 개최
- 27 산욱링 구금소에 체포된 정치운동가들과 연대하는 시위
- 28 우산혁명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천 명의 홍콩인들이 결집, 홍콩 중심가 레이저 포인터 시위.
- 29 반-전체주의(Anti-totalitarianism) 집회가 세계 50여개 도시에서 진행. 경찰과 시위대의 극심한 충돌 발생. 인도네시아 외신 기자 베비 인다 씨가 경찰이 쏜 고무탄을 맞아 실명
- 30 시위대 기자회견/ 항구에서 인간 띠 시위/ 학생파업
10. 1
- 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 애도 행사
- 민주주의의 사망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뜻으로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 집행. 경찰은 모든 시위를 불허했으며 총 6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해 진압 시도.
- 경찰이 실탄을 근거리에서 발사해 17세 고등학생이 심장 근처에 총상을 입음.
- 경찰은 3일 뒤 피해자를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폭동죄로 기소
10. 4
- 복면금지법(긴급법) 발의
- 10.5부로 식민시대에 도입된 긴급법 발동. 행정장관이 입법회의 의결 없이 임의의 행정 집행을 가능하게하는 법안.
- 복면금지법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긴급법을 근거로 발표된 첫 법안.
10.10
- 홍콩 중문대 여학생 소니아 응, 산욱링 구치소에서 경찰이 행한 성폭력 공개 증언
10. 16
- 민간인권전선 지미샴 의장, 괴한에게 쇠망치로 맞아 중상
10. 21
- 경찰이 카오룽 시내 중심가 이슬람 사원에 파란색 염료가 섞인 물대포 발사
- 이튿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사원을 방문해 사과.
10. 23
- 송환법 개정의 계기가 된 찬퉁카이 석방.
- 홍콩은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으므로, 살인죄 적용이 어려워 돈세탁 혐의만을 적용해 구금 중이었던 찬퉁카이 석방.
- 출소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모든 홍콩인에게 죄송하다고 밝힘.
10. 31
- 할로윈을 맞아 긴급법(복면금지법)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회
- 경찰이 이례적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 최루탄을 발사하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함
- 이날 체포되거나 경찰 폭력 피해를 입은 외국인도 다수 존재
11. 8
- 홍콩이공대 학생 차우츠록 사망
- 11월 5일 경찰에 쫓겨 건물에서 추락한 차우츠록 씨가 끝내 사망. 경찰폭력이 직잡 사인이 된 첫 사망자로 기록. 차우 씨의 사망은 이후 시위가 다시 과격화되는 양상에 영향을 줌
11. 10
- 식품보건부 장관에게 시위진압 도구에 섞인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질문 제기 – 고농도 다이옥신 잔류 의혹
11. 11
- 홍콩 교통경찰, 실탄으로 무방비 상태의 시위대 복부 사격 – 간 파열
–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총알은 신념을 죽일 수 없다”고 말하며, 민주주의는 마땅히 가져야 하는 권리이며, 본인 역시 살아서 민주주의가 성취된 홍콩을 마주하는 그 날을 보겠다고 밝힘.
11. 12
- 홍콩중문대 최루탄 폭력, 70여명 부상. 이 날 발사한 최루탄은 2356발에 달함.
– 이 사건으로 세계의 많은 지성인과 학생들이 홍콩 경찰의 폭력 행위 규탄
11. 16
- 인민해방군이 홍콩침례대학 인근 도로 청소
– 캠퍼스 인근에 주둔하는 인민해방군 부대원이 거리에 놓인 벽돌을 치우는 등의 청소작업.
– 이는 시진핑 주석이 시위대를 ‘폭력범죄 분자’로 규정하며 질서 회복을 강조한 뒤에 이루어진 것.
11. 17
- 홍콩 이공대 폭격, 2주간 포위
- 홍콩 경찰이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시내 각 대학 캠퍼스에 진입을 시도하고, 거점이 되었던 이공대 봉쇄
- 18일 하루 동안 최루타 1458발, 고무탄 1391발, 빈백탄 325발, 스펀지탄 265발에 달함
- 뿐만 아니라 경찰은 이공대 진압 시도 과정에서 16명의 구급대원을 체포했는데, 이는 “국제 인도주의 관례를 위반한 것이며, 문명세계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행위”라는 강도 높은 비판을 받음.
- 캠퍼스 내부에서는 봉쇄 기간 동안 음식과 물 부족으로 고통받았고, 극단적 스트레스 증세로 실어증을 보이는 사람도 나옴
11. 18
- 홍콩 고등법원, 복면금지법 위헌 판결
– 앤더슨 초우 카밍(Anderson Chow Ka-ming) 판사는 106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서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모든 경우에 대해 홍콩 행정 책임자(행정장관)가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홍콩 헌법 격인) 기본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벗도록 경찰이 강제하는 조치는 과도하다. 이는 사실상 경찰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힘.
11. 25
-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파 압승.
– 총 투표자는 294만 명으로 역대 최고 투표율 71.2퍼센트 기록.
– 범민주 진영은 총 18개 선거구 452석에서 388석을 획득하며 59석을 확보한 친중파에 대해 최초로 압도적인 승리 기록.
– 18-35세의 젊은 유권자층의 적극적인 참여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
–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
11. 27
-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 홍콩 인권법 서명.
– 미국의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인권 상황을 점검하여 홍콩에 부여해 온 통상 특혜를 지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으로 구성.
– 상/하원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법안은 미중 무역협상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으나, 통상 압력을 통해 중국 정부가 홍콩과의 일국양제 체제를 지속해 나가게끔 하는 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를 얻음.
11. 29
- 경찰, 홍콩 이공대에서 철수
– 경찰이 13일 간의 이공대 봉쇄를 풀고 철수. 경찰의 봉쇄 이후 이공대를 빠져나온 시위대는 미성년자 300명을 포함해 모두 11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짐.
12. 2
-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로 홍콩 시위 지지 언론 활동을 해온 율리 리스와티 추방.
– 이민국은 비자 기한 만료를 이유로 리스와티 씨를 체포했지만, 그는 2년 지속되는 고용계약을 맺은 상태였고, 이 경우 고용주가 이민국에 서한을 보내서 체류 연장을 신청하는 것이 관례. 홍콩 시위 지지 활동을 억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혐의가 짙음.
12. 8
- 홍콩 여성성폭력예방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홍콩 시위에 참여했다고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67명으로 조사됐다고 밝힘.
2020
2. 1
- 타이지역 습격사건 5개월 기념 집회 이후 집회 잠정 선언 결정.
5. 8
- 입법회 의장 부당선출 항의 소요사태 발발
5. 28
- 외국 세력과의 결탁,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하는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은 <홍콩보안법>,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통과. 찬성 2878표·반대 1표
6. 4
- 빅토리아 공원 천안문 추모 촛불 행사
6. 30
-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만장일치 통과 및 시진핑 국가주석 서명
7. 1
-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7. 11-12
-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할 야권의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 18개구에서 61만명의 유권자 참여
7. 29
- 토니 청,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후 연행
- 홍콩 정부, 홍콩의 모든 식당 내 식사 금지 정책 강행
8. 2
- 9월 6일 예정이었던 입법회 선거 1년 연기 결정
8. 10
- 국가보안법 ‘외세결탁’ 등의 혐의로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분열선동’ 혐의로 아그네스 차우 체포
8. 27
- 민간인권전선 제안, 7. 21 위엔롱 시위 백색테러 사건을 왜곡하고 있는 정부에 대항한 ‘검은 티셔츠 입기’ 캠페인
9. 6
- 입법회 선거 연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9. 23
- 홍콩정부에 등록된 언론 매체만 지원하겠다는 홍콩 경찰의 발표 – 홍콩 언론인 협회 반발.
10. 23-25
- 열두명의 홍콩인을 위한 국제 공동 행동
-정치적 망명을 위해 선박을 타고 대만으로 향하다 체포되어 중국에 구금된 홍콩 청년 12명의 석방을 요청하는 국제 공동 행동. 23일부터 25일까지 전세계 32개 도시에서 동시 개최.
2021
1월
- 코로나19를 이유로 위치 추적 앱을 사용하라는 요구가 강화되고 있음. 이에 대해 다수의 식당과 시민들이 거부함.
- 명문 학교들에서도 학생들 이민 크게 늘고 있음. 보안법 하의 홍콩 미래에 대한 우려와 불안 큼.
1. 2
- 2020년 말 망명 선포하고 영국에 가있는 前 의회 의원 테드 후이와 가족의 HSBC은행 계좌가 경찰에 의해 동결 요구되고 신용카드 취소됨. 세계적 금융허브인 홍콩에서 정치적 고려로 개인의 재산이 침식되는 사례라는 비판 나옴.
1. 6
- 경찰 1천 명 출동해서 국가정권전복죄로 53명 체포하고 160만 홍콩달러 동결.
- 2020년 의회 선거 때 민주파 예비경선을 한 것에 대해 국가정권전복죄라고 함.
- 미국 변호사도 체포됨.
- 친중 성향의 정치인 마이클 티엔도, 민주계 인사 53명 체포에 대해 정부가 더 명확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예비경선을 치른 것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함.
1. 9
- 홍콩정부가 국제 체포령 내려서, 덴마크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을 체포해야겠다고 덴마크 정부에 인도 요청함.
1. 14
-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민주파 50여 명의 핸드폰 200개가 압수당한 뒤 중국 본토로 보내져서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고 워싱턴포스트에서 보도함. 경찰은 이에 대해 답변 없음.
1. 15
- 홍콩 민주파 대거 체포와 관련하여 중국본토와 홍콩의 6명 관원에 대해 미국정부가 제재함.
- 정부가 18만 명의 공무원에게 충성 선서를 4주 안에 하도록 요구하고, 위반하면 행동을 취하겠다고 함. 공무원 사직자 계속 늘어남.
1. 16
- 보안국장은, 홍콩의 기존 법과 상관없이 경찰은 보안법에 근거하여 시민의 통신정보 수집할 수 있다고 함.
1. 22
- EU(유럽연합) 의회에서, 중국 정부의 홍콩 민주파 탄압에 대한 비판 결의안 채택함.
- 친정부파 의원이 홍콩 전체 학교 교실에 CCTV를 달아서 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감찰하자고 제안하여 크게 비판이 제기됨.
1. 26
- 홍콩과기대가, 학생회가 자우츠록(2019년 시위 과정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과기대생) 추도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학생회장과 내무 부회장을 강제로 한 학기 휴학시키고 75시간 캠퍼스 복무령 강제집행함.
2월
- 언론에 대해 연이은 감시통제 강화
- 공영방송 RTHK 수장 교체에 이어 계속되는 프로그램 검열 및 삭제.
- 새로 RTHK 수장으로 임명된 신임 방송국장(廣播處長)은 정부 민정사무국 부(副)비서장으로서 언론매체 관련 경험 전혀 없이 이 자리에 임명됨.
- 국경없는 기자회의 세계 언론자유 평가에서 홍콩은 2002년 18위였으나 2020년 80위로 추락했음.
2. 3
- 홍콩 민주화 지수, 중국 통제 강화에 87위로 추락.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발표한 세계 민주지수 통계에서 홍콩 민주화 지수는 1년 전보다 12단계가 떨어져, 167개국 가운데 중위권으로 하락함.
- 홍콩의 민주주의 순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보다 낮아짐. (참고로 한국은 2020년 23위였음)
- 국가보안법 위반자 97명 체포.
- 친정부파 정치인 라우지팡은 홍콩인이 무지하고 국제시야가 좁으므로 어릴 때부터 국가안전(국가보안)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교육에서 이런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함.
2. 7
- 라디오 진행자가 선동을 의도했다는 죄목으로 잡혀감.
2. 10
- 최초의 국가보안법 기소 사건이 배심단 없이 국가안전(보안) 지정 판관 3명만으로 진행됨. 홍콩의 법 전통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여 법치에 대한 문제 제기됨.
- 16살 소년이 폭동죄 인정, 폭동 인정한 피고 중 최연소. 안건 발생시 겨우 14살이었음.
2. 19
- 새벽에 12명의 청년을 2019년 11월 홍콩이공대 사건 관련해서 체포하여 폭동죄 기소
2. 24
- 정부 예산 적자 큰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항목에 80억 홍콩달러(한국돈 약 1조 1,700억원), 경찰 관련 항목에 250억 홍콩달러(한국돈 약 3조 5천억원) 배정함. 경찰 관련 예산 계속 늘어나고 있음.
- 2020년 하반기에 중고등학교에서 1,400명 이상 중퇴. 전년도 동기 대비 23% 증가. 정부의 개입과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이민과 유학 떠나는 학생들 계속 증가.
2. 27
- 폭동죄 기소당했다가 재판에서 무죄판결로 죄를 벗은 시민들에 대해 정부 율정사(법무부)가 다시 상소함. 이와 같이 무죄판결받거나 가벼운 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정부가 상소하여 무거운 형을 이끌어내는 사례 늘고 있음.
2. 28
- 민주파 예비경선 관련 체포된 50명 이상의 인사 중 47명에 대해 국가정권전복 串謀죄 확정
3. 1
- 민주파 예비경선 관련 체포되어 국가정권전복 串謀죄 확정된 47명에 대한 법정 심리 날 영국·캐나다·독일·미국·스웨덴·EU·네덜란드 등 영사관에서 와서 법정 밖에 줄 서 있었음.
- 미국과 EU에서 이 홍콩 민주파 47명을 즉각 석방하라고 성명 발표함.
- 홍콩중문대 새 학생회 내각이 4천명 투표 중 98% 획득하여 임기 시작하려 했으나 학교 측의 방해 그리고 본인과 가족에 대한 위협전화 속에서 어렵게 총사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함. “사망 위협 앞에서 우린 정강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드린다. 가족의 안전 위협까지 들고 나오는 걸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측은 학생회를 계속 비난하며, 학생회비 수납 서비스도 중단하고 학생회 간사들이 학내에서 각종 위원회 직무 맡는 것도 모두 잠정중단한다고 발표하여 사실상 학생회 역할 하기 어렵게 됨.
- 홍콩 공영방송 RTHK에 새로 주석으로 온 방송국장(광파처장)이 계속 RTHK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데 대해 문제제기하며 피디 등 언론인들 연이은 사직.
3. 2
- 홍콩의 대학 중퇴자 수가 2019-2020년도에 2천명 이상으로 1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함. 보안법 이후 대학의 상황과 홍콩사회의 앞날에 대한 우려 반영.
3. 4
-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세계경제자유지수에서 홍콩은 목록에서 제외됨. 중국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홍콩 따로 거명 안 함. 헤리티지재단 창립자가 설명하기를, 홍콩은 환상적일 정도로 개방적인 곳이었으나 이제 홍콩의 자유는 위축되었다고 함. 세계경제자유지수 시작된 이래로 홍콩은 연속 25년간 1위였음.
- 재판관이 보석을 비준한 민주파 인사들에 대해 정부 율정사(법무부)가 즉각 이의신청함.
- 국가보안법 발효 후 경찰 국가보안처(안전처)에선 총 100명 체포했다고 발표함. 평균 2.5일당 1명 체포함.
3. 7
- 캐나다 밴쿠버에서 47명의 민주파 인사 성원하는 시위 열려 약 500명 참가함. 세계 곳곳에서 계속 지지 집회와 시위 열리고 있음.